6월 29일 제62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이 서울 인사동 공화랑에서 현장 진행으로 개최되었다. MBS는 경영의 해법과 새로운 통찰을 원하는 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독서모임으로, 이날 참석자들은 지식의 향연 속에서 각 분야의 깊이 있는 통찰을 직접 듣고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
29일 오후, 정병모 교수(한국민화학교 교장, 전 경주대 교수)의 특별 강연 "민화는 민화다"가 열렸다. 2017년 동아일보 연재를 통해 민화 대중화에 앞장섰던 그는 이날 강연에서 특유의 따뜻하고 통찰력 넘치는 시선으로 조선 민화 속에 숨겨진 '한국적 휴머니즘'과 '스토리텔링'의 힘을 복원해냈다. 특히 그의 강연은 민화 중에서도 책거리(책가도)에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지며, 그것이 어떻게 현대 'K-아트'의 원류가 될 수 있는지를 학술적이고도 생생하게 증명했다.
강연은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진행되었으며, 화조도와 까치호랑이를 거쳐 최종적으로 책거리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로 제시했다.
[주제 1] 꽃과 새는 곧 사람... '화조도'에 투영된 인간관계

정 교수는 경산 소월리 유적 출토 사람 얼굴 토기를 화면에 띄우며 한국적 휴머니즘의 뿌리를 찾았다. 그는 민화 속 화조도를 자연물이 아닌 사람의 의인화로 해석했다. 국화는 은일한 선비를, 모란은 부귀한 자를, 연꽃은 군자를 의미하며, 새를 통해 끈끈한 인간관계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수대조는 장수를, 잉꼬는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등, 민화는 옹기종기하고 아기자기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관계의 끈끈함을 강렬하게, 때로는 에로티시즘의 클라이맥스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주제 2] 바보 호랑이와 멍청한 용... 풍자와 해학의 상징
이어진 '까치 호랑이'에 대한 설명에서는 민중의 풍자와 해학이 빛났다. 정 교수는 김홍도의 사실적인 호랑이와 민화 속 '관념적 호랑이'를 대비시켰다. 그는 민화 속 호랑이가 사팔뜨기에 꼬리를 내리고 혀를 내민 '바보 호랑이'로 묘사된 것은 당대 관리(목민관)에 대한 민중의 증오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17세기 철화백자에 등장하는 '멍청한 용' 역시 양란(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무능한 통치자에 대한 환멸을 표현한 결과물로, 민화는 모든 사물을 사람의 눈으로 해석했음을 강조했다.

[주제 3] 조선 책나라, 책의 상상력... '책거리'에 담긴 현대성
강연의 클라이맥스는 조선의 독창적인 정물화인 책거리(책가도)였다. 그는 책거리 속 책을 유교 국가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으로 해석했다. "책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책으로 세상에 나아가고, 책으로 세상을 다스렸다"는 정조의 철학이 책거리라는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이날 정 교수의 강연에서는 책거리의 현대성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제시되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책사랑 문화를 보여주는 김홍도의 <자리짜기>를 예로 들며, 책거리 역시 다산(석류·포도·유자)과 장수(복숭아), 출세(깃·감) 등 민중의 소망을 담은 '책탑신앙'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안수처럼 책탑 위에 얹어 놓은 소망의 그릇"이라는 비유는 책거리에 담긴 절절한 마음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강연 중간 쉬는 시간에 현장에서 만난 김손비야 기자에게 이번 전시에 얽힌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귀띔해 주었다. 그는 "이번 공화랑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모두 탄탄하게 기량을 다져온 실력파들"이라며 "한국민화학교에서 민화 작가들을 키우고 배출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번 갤러리현대에서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이번 전시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곧 펼쳐질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정 교수는 책거리의 미학을 '자유로운 삐뚤빼뚤의 미학'으로 정의하며, 과학적 잣대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화풍을 두고 세계적인 과학자 미나스 카파토스가 "양자역학적"이라고 극찬했음을 소개했다. 특히 청나라를 통해 유입된 서양화 기법이 조선의 화가들을 만나 어떻게 다시점(多時點)과 역원근법으로 독창적으로 변용되었는지 설명하며, 책거리가 얼마나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구성으로 발전했는지 증명했다.
이러한 구도적 독창성과 더불어, 당대 화원의 궤적을 좇은 색채 연구 결과도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 책거리의 대가 이형록이 이응록(57세), 이택균(64세)으로 생전 두 차례 개명했는데, 이 시기에 맞춰 그의 작품 바탕색이 갈색에서 암녹색, 그리고 청색으로 변화해 간 과정을 밝혀낸 것은 매우 흥미로운 학술적 성과로 꼽힌다.

강연의 마지막은 민화가 어떻게 현대 'K-아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으로 마무리되었다. 정 교수는 현대 미술 트렌드가 각 지역의 전통과 역사, 삶을 바탕으로 현대화한 작품을 선호하며 토속·원시 미술에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전통적인 삶과 현대적인 창의성을 갖춘 민화가 바로 이 트렌드에 가장 부합하는 'K-아트'의 주인공이라고 단언했다.

이날 강연은 조선의 민화가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이자 끈끈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예술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를 보듬고 아기자기하게 소망을 빌던 민중의 마음은, 이제 'K-아트'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에 끈끈한 위로와 해학을 건네고 있다.

강연에서 엿본 책거리의 역동적인 매력과 현대적 변용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전시장에 발걸음해 보는 것은 어떨까. 현대 작가 5인(경지·신미경·장원실·허령·홍경희)이 오늘날의 감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책거리, 낯선 공간> 전이 서울 돈화문로 공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7월 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매혹적인 민화의 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전시 안내]
전시 제목: 책거리, 낯선 공간 (Minhwa Reimagined)
참여 작가: 경지, 신미경, 장원실, 허령, 홍경희
전시 일정: 2026. 06. 22(월) ~ 07. 05(일) / 10:00 ~ 18:00
전시 장소: 공화랑 (서울특별시 돈화문로 95, 2F)
출처 : 브랜드뉴스(BRAND NEWS)(https://www.ibran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