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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디어 제주] “만팔천 신의 그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글쓴이 dk*** 등록일 2026-09-21 조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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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팔천 신의 그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정병모 한국민화학교 교장이 18일 제주공예박물관에서 '제주민화, 바다를 품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 김형훈 기자] 제주에는 신이 만팔천이나 산다. 마을마다 당이 있고, 당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다. 그 많은 신을 그림으로 옮겨온 것이 무신도(巫神圖)다. 여기에 문자도까지 더하면, 제주 민화는 육지의 그것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걸 현대화시킨다면 어떨까? 무기가 되고도 충분히 남는다.

18일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있는 제주공예박물관. ‘제주민화, 바다를 품다’라는 주제의 강연 자리에 사람들이 한둘 모였다. 한국민화학교 정병모 교장이 강연을 펼쳤다. 그는 경주대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한 뒤, 한국민화학교를 열어 전국 곳곳에서 수강생을 길러내고 있다. 방송에서도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그가 강의하는 시간이면 일부러 발걸음을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민화 현장에서 그의 이름은 가볍지 않다.

전국에서 민화를 배우는 인구는 20만에서 30만 명이나 된다. 국민 200명 중 한 명꼴이다. 정병모 교장은 이 흐름을 담담히 짚었다.

“전통 미술 가운데 지금 가장 뜨겁게 현대로 이어지는 게 민화입니다. 이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해요.”

예전엔 서양을 흉내 내는 게 세계화였다면, 지금은 각 지역 고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가들이 주목받는 시대라고 그는 강조한다. 2022년 카셀 도큐멘타,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지난해 뉴욕 아모리쇼. 민속 예술과 원시 미술, 독학한 작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조명받고 있다. 아모리쇼에서 스타로 떠오른 작가는 한국인이었다.

서양화가 주류라는 인식은 옛것이다. 흐름은 바뀌었고, 그 흐름에 제주민화가 있음은 물론이다. 정병모 교장은 제주 민화의 특징을 세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3단 구조라는 점. 제주도는 하늘과 땅과 바다가 나뉜다. 그같은 자연을 민화에 입혔다. 상단과 하단에 제주 자연을 넣고, 그 사이엔 ‘유교’를 얹힌 게 특징이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걸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제주라는 틀 속에서 받아들였어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도 정병모 교장이 꼽는 제주 민화의 특징 중 하나다. 무덤 앞을 지키는 자그마한 동자석이 그런 걸 말해준다. “군더더기 없이 시크하다”고 그는 콕 집어서 말했다.

공간 분할도 눈여겨봐야 한다. 제주도 민가는 안거리와 밖거리라는 특징적인 공간 구조를 하고 있는데,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간섭이 덜하다. 그런 삶이 그림에도 스며있다는 설명이다.

“제주도 사람들의 삶은 공간을 나누면서 그 공간이 결국 하나로 어우러지죠. 여기에 하나를 더 얹는다면 영적인 밀도를 들 수 있겠죠.”

‘영적인 밀도’는 신화의 섬, 제주가 지닌 특징이다. 제주는 수많은 신들의 고향답게, 민화에도 그런 게 녹아 있다. 정병모 교장은 변시지의 그림이나 강요배의 그림을 보며 제주만의 영적인 밀도를 보게 된다고 곁들여 설명했다.




제주공예박물관은 민화를 위해 문을 열어두었다. 정병모 교장의 강연과 아울러 오는 9월 30일까지 한국민화학교 공모전에 출품해 당선된 작품을 마주할 기회도 있다. 바로 ‘2026 제주민화 페스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2회째를 맞는다.

‘2026 제주민화 페스타’에 몰린 작가만 80명에 이르며, 제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도 17명이나 된다. 이번 페스타는 조선시대 지역마다 다르게 피어났던 민화를 각 지역의 색으로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전국에서 모인 작가들이 전시장을 채우다 보니, 정작 걸 수 있는 공간이 좁다는 한계는 있다. 어쩌면 그런 공간을 새롭게 찾는 그 출발점이 올해 페스타일 수도 있다. 아울러 관광 제주를 새롭게 들여다볼 기회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민화 페스타가 앞으로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랄 수 있다고 봐요. 제주의 먹거리이기도 해요. 전국의 작가들이 전시를 보러 왔다가 2박 3일을 머물렀다 가기도 하거든요.”

전통은 낡은 게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세계를 들썩였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새로운 문화현상의 중심이 대한민국이며, 그 중심에 민화가 있음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이젠 오래 전 제주도라는 섬의 보물창고에 갇힌 민화를 끄집어낼 시간이다.

출처 : 미디어제주(https://www.mediajeju.com)